장영실을 읽고

장영실_1


장영실은 중국인 아버지와 기생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천한 관노 출신이다. 관기의 아들로 태어났던 장영실은 천민의 아이라 항상 놀림을 받았지만 장영실은 굴하지 않고 언제나 창의적이고 열정이 가득한 아이였다. 하루는 자신을 천민으로 놀리는 친구에게 본때를 보여주려고 참나무팽이를 만들어 보이기 했으며, 자신의 장난감 보따리를 풀어 친구들에게 자랑을 하기도 했다. 관기의 자식이었기에 관아의 노비로 가야했던 장영실은 자신의 위치에 비관하지 않고 오히려 맡은바 충실하고 성실했다. 그는 어릴 때부터 남달리 총명하고, 호기심이 많았다. 또한 손재주가 좋아 어떤 물건도 원리를 금방 이해하여 고칠 수도 있었다. 그는 세종대왕의 깊은 배려에 대해 감사하는 뜻에서 열심히 연구한 결과 우리나라 최초의 천체 관측기구인 '간의'를 만들었고, 뒤이어 1년만에 천체 관측기구인 '혼천의'를 만들어 세종대왕을 놀라게 했다.


장영실_2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이런 장영실의 노력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시간을 알리는 기구인 '자격루'가 탄생하였다. 이것을 만드는데 드는 돌과 시간과 노력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뒤이어 '앙부일구'라는 더 간편한 해시계를 발명했고 이어서 '현주일구', '정남일구', '일성정시의'라는 관측기구를 발명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장영실이 우리나라의 과학발전에 얼마나 큰공을 기여했는지 알수 있다. 장영실의 인생관은 '나의 노력으로 남을 위해 무언가 일을 한다는 것은 매우 기쁜 일이다.' 였다.이런 목표와 배움은 현재 우리들에게 너무나도 필요한 마음가짐이라 할 수 있다. 왕의 걱정을 풀어주는 사람이라고도 불렸던 장영실은 계절의 변화와 시간의 흐름을 한눈에 볼수 있는 장치인 '옥루', 가뭄과 홍수를 미리 알고 이겨 낼수있는 '측우기', 개천이나 강물의 양을 잴수있는 기구인 '수표'등의 뛰어난 과학기구를 제작하였다. 그러나 장영실은 안타깝게도 불행한 최후를 맞게 되었다. 어느날, 장영실이 세종대왕의 명에 따라 몇주일동안 고생하며 만든 가마를 세종대왕이 타게 된다. 이 가마는 장영실이 만든 가마이기 때문에 흔들림이 거의 없었다. 그런데 얼마쯤 가다가 가마꾼중 한명이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면서 가마가 땅에 부딪쳐 부서지고 그속에 타고 있던 세종대왕은 영문도 모르는채 넘어지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들은 의금부에서는 당장 사형을 내렸지만 사형만은 면하게 해달라는 세종대왕의 어명에 옥살이를 하게된다.


장영실_3


세종대왕은 장영실을 감옥에 넣지않고 자리도 뺴앗지 않고 내쫒으지도 않을려고 했지만, 옥에서 몇년을 살다가 나온 장영실은 끝내 벼슬의 자리 또한 잃게 되고 그 후 장영실의 행방은 아무도 모르게 된다. 세종대왕은 장영실에 대한 믿음과 신뢰 를 가지고 있엇으며, 장영실이 절대로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엇지만 법이 그렇게 정해져 있어서 할수없이 내쫒고 관직을 빼앗을 수 밖에 없었다. 장영실은 모든 방면에서 봐도 끊임없는 노력으로 자신의 천한 신분을 딛고 일어선 사람이며, 장영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의 과학 기술도 발전할 수 있었다. 또한 이런 장영실의 능력을 알아채어 천한 신분에 있는 사람인데도 불구하고 훌륭한 과학자로 키워준 세종대왕님도 정말 훌륭한 위인이다. 이런 사람들을 본받아 우리도 장영실처럼 불리한 처지나 어려운 환경을 딛고 일어서서 제 2의 장영실이라 불리게 될 만큼훌륭한 사람이 됬도록 노력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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