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익점을 읽고

문익점_1


문익점은 고려 말기의 문신이자 학자로서 중국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가지고 들어와 목화의 보급에 크게 기여한 인물이다. 문익점의 본관은 남평, 자는 일신, 호는 삼우당, 초명은 익첨이며 문숙 선과 조 씨 부인 사이에서 태어난 인물이었다. 조 씨 부인은 심상치 않은 꿈을 꾸고 이름을 문익첨이라 지었는데 스물한 살이 되어 문익점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문익점은 어렸을 때부터 매우 총명하고 마음씨가 착하고 효심이 지극했다. 그는 열심히 공부하여 언제나 1등을 도맡아 했다. 익점이 11살이 되자 그의 스승은 익점에게 더 이상 가르칠 것이 없어 다른 스승으로 보낼 결심을 하고 집을 떠나보냈다. 문익점은 한산에 도착하여 이곡 선생 댁에서 머물면서 공부하게 되었다. 익점이 이곡 선생의 집에 가는 도중 여러 백성을 보았는데 먹을 것이 없어 못 먹는 백성과 추운 겨울날인데도 따뜻한 옷 한 벌 못 입는 백성들을 안타깝게 생각하였다. 문익점의 이러한 생각은 어렸을 때부터 안타깝게 생각하였다. 이는 관리가 되었을 때도 백성들은 마찬가지였다.


문익점_2


1364년 최유 일파의 일에 가담한 것으로 몰려 원나라의 윈난 지방에서 억울한 귀양살이를 하게 된다. 원나라 귀양살이 중 가장 부러웠던 것은 그들이 입은 따뜻하고 질긴 무명옷을 입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 무명옷은 ‘목화’라는 꽃에서 나오는 솜이었는데 익점은 원나라에서 목화를 보고 우리나라로 가져오고 싶다고 말했지만, 그때에는 목화가 매우 귀한 것 이어서 원나라에서도 ‘목화’에 대한 엄격한 법률이 있어 우리나라로 가져오는 것은 불가능하였다. 그는 목화밭에서 목화송이를 몰래 가지고와 목화씨를 발랐는데 그것은 모두 열 톨이었다. 귀양살이가 끝나 다시 고국으로 돌아오게 된 익점은 목화씨를 어떻게 우리나라로 가져올지를 생각하였다. 고국으로 돌아오는 길에 익점이 목화씨를 들키면 그는 바로 죽임에 쳐하여 했었다. 많은 생각을 한 익점은 목화씨를 붓 뚜껑에다가 숨겼다. 다행히 몰래 고려로 가지고 온 목화씨 열 톨을 고향인 진주로 내려가 장인인 정천익과 나누어 재배를 시험하였다. 그중 그가 심은 것은 모두 재배에 실패하였지만, 정척 익이 심은 씨앗 중 하나에서 싹이 트고 꽃이 피어 100개의 씨앗을 얻을 수 있었으며, 가을이 되어 목화송이가 드러내기 시작하여 목화밭은 하얀 목화송이로 뒤덮였다.


문익점_3


그로부터 십 년쯤 세월이 지나자 목화씨는 전국 방방곡곡으로 퍼져나갔다. 하지만 목화송이로 뒤덮인 것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를 몰랐었다. 그때 마침 원나라 스님이 고려에 있었는데, 그 스님이 실을 뽑는 기계를 만들고 이로 인해 목화에서 실을 뽑을 수 있게 되자 온 국민이 원나라에서 본 그 무명옷을 따뜻하게 입고 겨울을 날 수 있었다. 우리는 고려 시대 때에 삼베로 추운 겨울철을 지냈었는데 문익점에 의해 목화가 전국으로 펴져 따뜻하게 보냈다. 원나라에서 목화씨를 가져올 때 문익점은 목화를 가져오는 걸 들키면 죽는 것을 알면서 죽음을 무릅쓰고 목화를 가져왔다. 다른 위인전을 보면 대부분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싸우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런 문익점의 내용에 감동을 받았고 싸우는 것만이 아닌 백성들을 위해 몸과 목숨을 바치며 목화를 구해내어 겨울 시절 춥게 지냈던 우리 고려의 백성들을 따뜻하게 해 준 것이 너무나도 감사하고 문익점의 이러한 행동에 우리나라가 더욱더 발전하여 살 수 있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이러한 문익점이 우리나라의 조상이란 게 너무나도 자랑스럽고 겨울철을 따뜻하게 해 주어 감사한다. 현재 산청군 신안면 신안리에 문익점의 묘소와 함께 그의 공적을 기리는 신도비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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