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을 읽고

안중근_1


대부분 안중근 의사라고 하면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위인으로 잘 알려져 있다. 이 책의 이야기는 을사조약을 체결하게 된 때부터 시작된다. 을사조약은 1905년 동양평화를 위해서라는 목적으로 이토 히로부미에 의해 계획된, 황제의 반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을사오적을 앞세워 체결된 조약 아닌 조약이다. 을사조약을 계기로 우리나라는 외교권을 박탈하게 되었고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일본의 침탈이 시작되었다. 이때 전 민중들의 울분은 나라를 가득 채웠고, 안중근 또한 그러했다. 안중근 의사는 1879년 황해도 해주부 수양산 아래에서 현감 안인수의 손자이자 진사 안태훈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는 것을 보고 조선을 사실상 일본의 식민지로 만든 을사조약이 체결된 것을 저항해 독립운동에 투신했다. 그는 나라밖에서 힘써야 한다는 아버지의 말을 따라 타국으로 망명하여 국권회복에 힘쓰고자 청으로 향한다. 거기서 그는 국권회복을 위해서는 교육이 우선임을 알고 학교를 세우는 등의 실력양성을 위한 노력을 하고 또한 한인촌 등을 돌며 의병을 모집하여 일본에 맞서 싸웠다.


안중근_2


삼흥학교를 세우고 돈의 학교를 인수해 교육에 힘쓰다가 1907년 연해주로 건너가 의병활동에 참여하였다. 1909년 이토 히로부미가 러시아의 재무상 코코브쵸프와 회담하기 위해 하얼빈에 오게 된 것을 기회로 삼아, 하얼빈 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권총으로 사살하였다. 이는 업적은 가장 잘 알려져 있으며, 이때 안중근에게 두려움은 전혀 없었다. 을사조약 이후 본격적으로 우리나라를 장악한 일본에 맞서 우리는 국권회복, 민족발전 등을 위한 여러 운동들을 전개했었으나 이 운동들의 대부분은 일본의 탄압과 방해로 중지된 것들이 많다. 을사조약도 마찬가지로 그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고종황제가 파견했던 헤이그 특사도 여러 어려움과 일본의 방해로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었다.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안중근은 그 을사조약이라는 하나의 장작에 불을 붙인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하였고, 이러한 안중근의 모습에 우리 민족은 더욱더 힘을 얻게 되었다.


안중근_3


이후 곧바로 체포되어 일본 정부에 넘겨져 뤼순 감옥에 갇혀 1910년 2월 14일에 사형선고를 받았다. 재판소에서도 굽히지 않고 굳건한 자세를 보였다.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이유는?이라는 질문에 우리 이천만동포를 괴롭히고 있다.라는 대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이 대답은 비록 한 줄의 짧은 말이지만 나에게는 마음이 뜨거워지는 한마디였다. 안중근은 조선의 여러 사람들이 안중근을 따라 할 것이라고 여길까 무서워 결국 사형에 처하게 된다. 3월 26일에 처형당했는데 유해는 찾지 못해서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한나라의 권력자를 죽였음에도 불구하고 보여준 당당한 태도는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졌고, 과연 내가 이때 살아있었더라면 이렇게 할 수 있었을까 하는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단순히 이토 히로부미를 사살한 인물로 알고 있던 안중근에 대해 깊이 알 수 있었다. 인생을 조국을 위해 태어나 조국을 위해 죽은 안중근. 대단하다는 말 밖에 더 이상 할 말이 생각나지 않을 정도로 감사한 인물이다. 자신의 소중한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우리나라의 발전과 독립을 위할 생각을 하는 걸 보니. 이런 마음들을 많이 본받아야 할 것 같다.

반응형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네이버 밴드에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댓글을 달아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