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관순을 읽고

유관순_1


매년 8월 15일 광복절의 의미를 되뇌면서 우리나라를 위해 헌신한 유관순의 위인전기를 읽어보았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 중에서도 여성 독립운동가라고 하면 나는 유관순이 가장 먼저 떠오른다. 우리가 지금 편하게 살 수 있게 된 것은 우리나라의 광복으로 인한 것이고 광복은 수많은 독립운동과 항쟁을 통해 이루어낸 큰 성과이자 지금의 우리에게 주어진 크나큰 행복이지 않을까 생각한다. 유관순은 1904년 충남 천안군 동면에서 유중권 씨의 딸로 비교적 좋은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그 지방에서 이름 있는 집안의 후손이며 어머니는 선비의 집안에서 태어나서 아름다운 용모와 마음씨를 갖춘 슬기로운 부인이었다. 유관순에게는 오빠 1명과 남동생 2명이 있었다. 3남 1녀의 집안에서 귀여움을 독차지해야 할 외동딸임에도 불구하고 아버지 유중권과 어머니는 어렸을 때부터 유관순을 철부지 아이처럼 키우지 않았다. 당시 일본에게 지배를 받게 된 우리나라의 상황을 설명해주며 강하게 유관순을 키워나갔다. 조용하고 얌전할 거라고 생각했던 유관순은 의외로 고집이 셌다. 한번 옳다고 생각한 일에는 끝내 굽히지 않는 고집 말이다. 그래서 이 고집 때문에 아버지와 마찰이 많이 생기기도 하였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런 유관순을 미워하지 않고 뚜렷한 주관을 칭찬하였다. 유관순은 아버지의 덕과 교육을 통해 바르고 씩씩한 아이로 커나갔고 여자도 학문을 익혀야 한다는 아버지의 신념 아래 바르게 자랐다.


유관순_2


1916년 13살 때, 지령이 교회에 와서 선교 활동을 하던 선교사 사 부인의 추천으로 유관순은 이화 학당에 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되었고 이화 학당의 사감으로 있던 하란사 선생님으로부터 민족의 독립에 대하여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러다가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나자 학생들과 함께 가두시위를 벌였고, 학교가 휴교에 들어가자 만세시위를 지휘하기 위하여 고향으로 내려갔다. 1919년 16살, 고등과 1년 때 결사대인 이문회 회원이 되었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중학생 3학년의 나이에 대단한 일을 펼친 것이다. 그리고 유관순은 3.1 운동에 가담하여 김한나, 윤성덕 등과 종로 경찰서에 붙잡혔다가 풀려났다. 고향으로 내려와 아버지, 오빠와 함께 경성에서는 양력 3월 1일에 만세를 불렀느니 고향에서는 음력 3월 1일, 아오내 장터에서 독립 만세를 부르기로 계획을 하고 지휘를 하였다. 유관순은 가까운 마을에서부터 100리 길이나 되는 먼 곳까지 돌아다니며 만세를 부르자고 말하고 다녔다. 유관순의 어머니가 태극기를 만들겠다고 나서고 부인들은 교회에서 밤새도록 몰래 태극기를 만들었다. 그러던 중 유관순은 음력 3월 1일 날 아오내 장터 만세 운동을 하다가 아버지와 어머니께서 일본 경찰의 총에 맞아 돌아가시고, 집은 불태워졌고, 오빠는 공주 경찰서에, 유관순은 일본 헌병에게 잡혀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다. 유관순은 공주 지방 법원에서 3년 확정 판결을 받고 서울 복심 법원에 상고. 서울서 재판 도중 재판장에게 의자를 던져 죄가 추가되어 7년 형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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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 유관순이 17세 때 서대문 형무소에서 옥살 이외 ‘취사실’에서 심한 고통을 받는 고문을 받았다. 유관순은 하루라도 빼먹지 않고 옥에서 틈틈이 독립만세를 외쳤다. 계속되는 고문에도 불구하고 유관순은 끝까지 외쳤으며 최 간수를 설득해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게 하여 최 간수는 쫓겨나고 유관순은 독방으로 갇히게 되었다. 독방에 갇혀서도 만세를 외치다 심한 고문을 당하던 관순에게 주먹밥에다 쇳가루와 모래를 섞어주자 유관순의 몸은 계속해서 망가져갔고 10월 14일 오전 10시, 서대문 형무소 독방에 혼자 갇혀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다 일본군의 고문으로 쓸쓸히 죽었다. 유관순은 여자이고 꽃다운 나이 18세이지만 겁먹지 않고 일본군에게 나라를 빼앗겼을 때 그의 앞에서 3.1 운동의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용맹함과 자신의 목숨을 버려가면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던 유관순의 애국심을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관순이 우리나라의 광복을 보지 못하고 죽었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다. 이러한 유관순의 희생에 우리나라가 광복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우리나라를 위해 온몸을 다 바치고 18살의 젊음을 바친 유관순이 한국인이라는 게 자랑스럽다. 나도 유관순을 본받아서 나라를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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